수학을 잘 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400여년 전 문호괴테는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수학이다.' 라고 단정지었다.
그 이후 유럽수학강국인 영국, 독일, 프랑스는 세계적 강국이 된다.
아인슈타인 등 독일에서 미국으로 추방된 후 미국이 강국으로 변신한다.
수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건강하고 잘 산다.
반면에 술, 담배, 마약,폭행에 빠진 사람들은 한결같이 수학에 약하다.
수학은 단 한치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우주공간을 철저하게 관찰한다.
수학자 그 중에
수학의 신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수 십, 수 백명 존재한다.
철학에 강했던
생각을 많이 하고, 따지기를 좋아한 그리스인에 의하여
수학발전이 급속히 이루어 진다.
수학의 시조가 되는 탈레스,
이 세상은 모두 수학이다라고 한 피타고라스,
수학의 교재를 처음 만든 유크리드,
수학 아카데미를 창설한 플라톤,
기하학과 미적분학에 공헌한 아르키메데스 걷거나 말 하기보다 숫자를 먽져 말했던 가우스,
시력을 잃은 후에도 후배들이 그 수학의 내용을 정리하는데 60년 걸렸다는 오일러,
좌표를 고안한 데카르트 집합을 무한에 활용한 집합의 창시자 칸토어
19살 때의 꿈을 이루었고 고전역학을 완성시킨 뉴턴 미,적분에서 획기적인 수학기호를 남긴 라이프니쯔 불안전성의 정리를 제안한 괴델
대학수학을 배우지 않아도 단 숨에 그 어려운 수학의 정리를 증명한 인도의 라마누잔
23가지 수학문제를 제기한 힐베르트 1905년 200여년간 유지되어온 수많은 고전역학을 완전히 부숴버린
곧, 시간과 공간, 질량, 중력, 길이, 에너지, 빛에 대하여 특수상대성이론은 밝힌 아인슈타인
건강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지만
행복한 인생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지금운 인생100새 시대이다. 인생 70을 기점으로 그 전,후로 정확히 구분하여
삶의 방식을 정 하여야 한다.
고령자의 최대관심사는 건강, 사교, 자연, 지식이다.
함축된 내용이므로 자기수준에 맞추어 개념을 재 정리하시도록 !
--생활체육의 필요성--
건강유지, 여가활용, 사회성강화
--생활체육의 구성요소--
프로그램, 시설, 지도자, 조직, 재정, 홍보
--운동변화의 목적--
기술향상, 안정성 확보, 기구의 개발
사랑에 대한 모든 상식은 사랑이 가슴에서 나온다고 하여 말해졌다.
그런데 사실 사랑은 우리 몸에서 만들어졌다.
손잡고.
안아 주었다면 ---+++---
가끔 회식자리에서 노래를 불러야 할 때가 있다.
음치인 나는 바로 ' 성불사의 깊은 밤' 을 부른다.
이유는 노래가 매우 간단하며 이은상이 지은 그 가사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노인은 느리다.
정확하게 느려지게 된다. 먼저, 신체적으로 기력이 약화된다..
다음, 더디게 정신적으로 늙어간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정신이 신체를 미쳐 따라가지 못 할 때, 앞으로, 옆으로, 뒤로 잘 넘어지니 조심해야 한다.
' 나는 누구인가 ? ', ' 어떻게 살 것인가 ? '
70대 이후부터 끊임없이 떠 오르고,
오래, 많이 생각하게 된다.
우리 대부분은
10,20대는 공부하느라고,
30,40대는 결혼, 육아에 ,
50,60대는 노후준비에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젊을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갔었고,
늙어서는 시간이 3~5배 빨리 흘렀다.
따라잡기가 어려운 것은 그냥 버리기 때문이다.
가고파는 이은상의 가사이다.
이은상은 당시 마산에 거주하면서 많은 시를 만들었다.
그가 어린시절 동경에서 양주동과 같은 자취방에 살 때
양주동은 평양의 천재라고, 이은상은 영남의 천재라면서 서로 우길 때
한 번은 양주동이 누가 천재인지 시합을 하자면서 무작위로 단어를 적어
암기 해 보라는 시합이었다. 10여개의 단어를 종이에 쓰고 이것을 외워보라는 것이다.
보통 6, 7개 암기되는 것이어서 이은상은 질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비오는 날 양주동이 없을 때, 양주동의 책상서랍을 열어보니
' 암기요령 '이라는 책이 있기에 그 책대로 이은상이 공부하여
양주동에 재시험을 요청하여 20개 이상의 단어를 제시하고 암기하라 하여
양주동이 패배했다는 이야기는 재미있고,유명하다.
이은상은 마산고등학교등에서 국어교사로 유명하였다.
당시 마산은 가고파에 나오는 그대로 마치 호수같은 바다에 전국최상의 기후로 휴양소가 있었다.
그런 마산이 화력발전소에 많은 중소공업공장이 들어서면서 그리고 이름까지 창원으로 바뀌면서
그 명성이 퇴색되었다. 마산이라는 이름그대로, 진해를 끼고 관광도시로 변모했다면 좋았을 텐데---
' 인생에 늦은 때는 없다. '고 한다. 그럴듯한 말이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다.
나이 70되어 안과에 갔더니 더 이상 눈의교정이 될 수 없어서
글을 읽을 수 없다고 하였다. 뿐만아니라 젊어서 해야 할 일이 있고
조금 늦어도 되는 일이 있다.